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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영국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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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2년 영국 총선은 1922년 11월 15일에 실시되었으며, 보수당의 과반 의석 확보와 노동당의 약진, 자유당의 분열과 몰락을 특징으로 한다. 이 선거는 보수당과 노동당 중심의 양당 체제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앤드루 보너 로가 총리로 이끄는 보수당이 344석을 얻어 승리했다. 노동당은 142석을 확보하며 제2당으로 부상했고, 자유당은 애스퀴스파와 로이드 조지파로 분열되어 의석수가 크게 감소했다. 총 투표율은 73.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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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영국 총선
지도
선거구별 1위 정당 지도
1922년 총선 결과에 따른 하원 구성
선거 정보
선거명1922년 영국 총선
국가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
유형의회
선거일1922년 11월 15일
이전 선거1918년 영국 총선
이전 선거 연도1918년
차기 선거1923년 영국 총선
차기 선거 연도1923년
선출 의석615석
과반 의석308석
투표율73.0% (15.8%p)
정당별 결과
앤드류 보너 로
보수당 대표앤드류 보너 로
보수당 대표 취임일1922년 10월 23일
보수당 대표 선거구글래스고 센트럴
보수당 이전 선거 결과382석, 38.37%
보수당 의석수344석
보수당 의석 증감38
보수당 득표수5,294,465
보수당 득표율38.51%
보수당 득표율 증감0.14%p
존 클라인즈
노동당 대표존 클라인즈
노동당 대표 취임일1921년 2월 14일
노동당 대표 선거구맨체스터 플래팅
노동당 이전 선거 결과63석, 21.20%
노동당 의석수142석
노동당 의석 증감79
노동당 득표수4,076,665
노동당 득표율29.65%
노동당 득표율 증감8.45%p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자유당 대표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자유당 대표 취임일1908년 4월 30일
자유당 대표 선거구페이즐리
자유당 이전 선거 결과36석, 12.99%
자유당 의석수62석
자유당 의석 증감26
자유당 득표수2,601,486
자유당 득표율18.92%
자유당 득표율 증감5.93%p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국민자유당 대표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국민자유당 대표 취임일1916년 12월 7일
국민자유당 대표 선거구카나번
국민자유당 이전 선거 결과127석, 12.64%
국민자유당 의석수53석
국민자유당 의석 증감74
국민자유당 득표수1,355,366
국민자유당 득표율9.86%
국민자유당 득표율 증감2.78%p
총리 정보
직책총리
선거 전 총리앤드류 보너 로
선거 전 총리 소속 정당보수당
선거 후 총리앤드류 보너 로
선거 후 총리 소속 정당보수당

2. 배경

1916년 12월,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총리가 사임하면서 자유당은 두 파벌로 분열되었다. 1922년 10월까지 보수당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이끄는 자유당 파벌(후에 "국민자유당"이 됨)과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1] 칼턴 클럽 회의 이후, 로이드 조지는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앤드루 보너 로가 보수당 단독 정부를 구성했다.[1]

전 총리 애스퀴스는 여전히 자유당 당수였지만, 전국적인 정치 논쟁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노동당은 두 자유당의 총 득표수와 의석수를 모두 넘어서며 제2당으로 부상했다.[1] 자유당 내 애스퀴스파와 로이드 조지파 간의 갈등은 심화되었고, 이는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1]

차낙 전쟁의 결과,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내각은 붕괴했다(1922년 10월).[1] 선거 일정은 이미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내각에 의해 공고되었기에, 축출된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대신 임시 내각으로서 보수당 내각이 구성되었지만, 자유당은 애스퀴스 계(자유당)와 로이드 조지 계(국민자유당)로 분열된 채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1]

이 선거 결과, 노동당은 의회 제2당의 지위로 약진했다.[1] 또한 자유당은 애스퀴스 계와 로이드 조지 계를 합쳐도 노동당 의석수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종래의 보수당·자유당 중심의 양당제에서 보수당·노동당 중심의 새로운 양당제로 향하는 신호탄이 되었다.[1]


  • '''선거 당시 총리''': 앤드루 보너 로(보수당)[1]

3. 선거 제도

완전 소선거구제로 각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를 얻은 후보 1명만 당선되었다. 유권자는 20,874,456명으로, 자격 요건은 다음과 같았다.[1]


  • 남성: 21세 이상
  • 여성: 30세 이상
  • 대학 졸업자는 출신 대학을 선거구로 하는 대학 선거권이 주어졌다.
  • 거주하는 선거구 이외에 사업장의 토지나 주택을 소유한 자도 거주 지역과 별도로 선거권이 주어졌다(중복 투표).

4. 정당별 정책

보수당은 유권자들에게 안정성을 제시했다. 보너 로의 선거 연설문은 다음과 같다.[1]

현재 국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국내외 모두에서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시민들의 주도성과 기업가 정신에 자유로운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전쟁의 경제적, 사회적 결과에서 벗어나는 길은 정부의 어떤 조치보다도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더욱 기대할 수 있습니다.영어

노동당은 광산과 철도의 국유화, 금융자본에 대한 부과금 부과, 그리고 평화 조약의 개정을 제안했다.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 향상, 임금 인상, 더 나은 주택을 약속했다.[2]

5. 선거 결과

1922년 11월 15일에 치러진 영국 총선의 투표율은 73.0%였다.[2] 차낙 전쟁의 결과로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내각이 붕괴하면서, 앤드루 보너 로가 이끄는 보수당이 임시 내각을 구성하여 선거를 치렀다. 자유당은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계열(자유당)과 로이드 조지 계열(국민자유당)로 분열된 채 선거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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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 노동당이 의회 제2당으로 약진하였다. 자유당은 애스퀴스 계와 로이드 조지 계를 합쳐도 노동당 의석수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기존의 보수당·자유당 중심의 양당제에서 보수당·노동당 중심의 새로운 양당제로 변화하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정당별 의석수 및 득표수·률 (의석을 얻은 정당·단체만 기재)
정당득표수%후보자수당선자수
보수당5,294,46538.5482344
노동당4,076,66529.7414142
자유당 (애스퀴스파)2,601,48618.933462
국민자유당 (로이드 조지파)1,355,3669.915153
보수당계 무소속116,8610.9203
무소속114,6970.8153
아일랜드 민족주의57,6410.443
영국 공산당30,6840.251
노동당계 무소속18,4190.141
헌법주의자16,6620.111
스코틀랜드 금주당16,2890.111
자유당계 무소속13,1970.131
colspan=5|615



유효투표수:13,748,300표

5. 1. 정당별 의석수

1922년 영국 총선 정당별 의석수
정당의석수
보수당344
노동당142
자유당62
국민자유당53
국민당2
공산당1
무소속3
합계615


5. 2. 정당별 득표율

정당득표수득표율
보수당5,294,46538.5%
노동당4,076,66529.7%
자유당2,601,48618.9%
국민자유당1,355,3669.9%
국민당57,6410.4%
공산당30,6840.2%
농민당21,5100.2%
입헌당16,6620.1%
스코티쉬 금주당16,2890.1%


6. 주요 결과 분석 및 영향

1922년 영국 총선은 보수당과 노동당 중심의 양당 체제가 시작된 선거였다. 자유당은 애스퀴스 계와 로이드 조지 계로 분열되어 선거를 치렀으며, 두 계파를 합쳐도 노동당 의석수에 미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보수당-자유당 중심의 양당제에서 보수당-노동당 중심의 새로운 양당제로 변화하는 신호탄이 되었다.[1]

1916년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총리가 사임한 이후 자유당은 두 파벌로 분열되었다. 1922년 10월까지 보수당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이끄는 자유당 파벌 (이후 국민자유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 칼턴 클럽 회의 이후 로이드 조지는 총리직에서 사임했고, 앤드루 보너 로가 보수당 단독 정부를 구성했다.[1]

전 총리 애스퀴스는 여전히 자유당 당수였지만, 전국적인 정치 논쟁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지 못했다. 로이드 조지의 국민자유당 일부는 보수당 후보와 경쟁하지 않았지만 (예: 윈스턴 처칠), 많은 주요 보수당 인사들은 보너 로 정부에 참여하지 않았다.

노동당은 이 선거에서 처음으로 두 자유당의 총 득표수와 의석수를 모두 넘어섰다. 미래의 총리 클레멘트 애틀리가 라임하우스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일부 자유당 후보는 자유당 재결합을 요구하며 출마했고, 다른 후보들은 애스퀴스와 로이드 조지를 모두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파벌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로이드 조지는 여전히 보수당과의 새로운 연정을 희망하고 있었다.

7. 각 정당 및 주요 인물 평가

이 선거는 보수당, 자유당, 노동당 간의 경쟁 구도 속에서 치러졌다. 특히 자유당은 애스퀴스 계열과 로이드 조지 계열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이는 1922년 총선의 주요 변수 중 하나였다.


  • 보수당: 칼턴 클럽 회의 이후 로이드 조지가 총리직에서 사임하고 보너 로가 이끄는 보수당 단독 정부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아서 밸푸어 경, 오스틴 체임벌린 경 등 주요 인사들은 보너 로 정부에 참여하지 않아, 선거 후 권력 균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었다.

  • 노동당: 이 선거에서 노동당은 처음으로 두 자유당의 총 득표수와 의석수를 모두 넘어섰다. 이는 양당제 구도에서 보수당-노동당 중심의 새로운 양당제로 변화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미래의 총리 클레멘트 애틀리가 라임하우스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것도 주목할 만한 결과였다.

  • 자유당: 애스퀴스 전 총리는 전국적인 정치 논쟁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자유당은 애스퀴스 계열과 로이드 조지 계열로 분열된 상태였다. 일부 후보들은 자유당 재결합을 요구하며 출마하기도 했지만, 두 파벌 간의 갈등은 여전했다.

참조

[1] 웹사이트 Parliamentary Election Timetables https://researchbrie[...] House of Commons Library 1997-03-25
[2] 웹사이트 Archived copy http://www.parli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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